[GJCNEWS=문민용 논설위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옷으로 맵시도 드러내고 센스도 드러낸다. 진짜 베스트 드레서는 겉옷보다 속옷을, 속옷보다 마음속 내면의 옷을 멋지게 입는다.
소라게 중에는 날 때부터 자기가 살 수 있는 껍데기를 가지고 나오는데 자기 껍데기를 가지지 못한 소라게가 있다.
그런데 집(껍데기)을 못 가진 놈은 자기 눈에 들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제집처럼 산다.
기어 다니다가 빈소라 껍질 가운데 하나를 고른 다음에, 집게발을 벌려 소라껍데기 입구를 재어 보고는 자기 몸에 맞겠구나 싶으면 지체 않고 배부터 밀어 넣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산다. 살다가 몸이 커져 불편하게 되거나 좀 싫증이 나면 껍데기를 획 벗어버리고 다른 소라껍데기를 찾아 나선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또 들어가 살다가 싫으면 또 집어던진다. 이것이 소라게의 생활 습성으로 욕심부리지 않고 특별한 자기 옷이 없어도 참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유럽의 어느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로 한 가난한 음악가는 예복을 장만할 돈이 없어서 옛날에 입던 낡은 예복을 입고 나왔다. 그런데 연주하는 도중 팔을 힘껏 휘두르는 바람에 그만 예복이 찢어져 셔츠가 보였다. 한 곡이 끝난 후 그는 실례를 무릅쓰고 셔츠 바람으로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사람들이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지휘자는 열심히 지휘했다. 그런데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느 귀족 한 분이 조용히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것을 보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웃음을 멈추고 하나, 둘 전부 웃옷을 벗었다. 그 결과 그날의 연주는 매우 감격스러웠고 성공적이었다. 마음속 내면의 옷을 잘 입는 센스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우리는 남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서 그 사람의 민망함을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의 옷을 갖추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성남에 사는 김선용 할머니(71)가 옷을 팔아 모은 10억 원의 재산을 서울대병원에 기탁했다. 평양 출신인 할머니는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국제시장에서 옷 장사를 시작하여 악착같이 재산을 모았다. 서울에 올라온 할머니는 목욕탕 등을 운영하며 돈을 모았다. “어디다 쓰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냐”고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할머니는
“사회가 베풀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전 재산을 기탁 했고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만을 위한 고급옷’ 때문에 질타를 받고 욕을 먹는 사람이 있고 ‘사랑과 감사가 담긴 옷’ 때문에 칭송을 듣고 박수를 받는 사람이 있다.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 이곳저곳을 두루 시찰하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너무나 더럽고 꾀죄죄해서 애처롭기가 그지없었다. 임금님은 소년을 궁궐로 데려가 신하들 앞에서 왕자로 삼겠노라고 공포했다. 이제 소년은 거지가 아니라 왕자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소년은 누더기 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장식과 좋은 옷감으로 만든 왕자의 옷을 입었다. 구걸하지 않아도 맛있고 좋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왕자는 자신이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환경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다. 아침이 되자 소년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시중드는 신하가 당황하며 “왕자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사실은 저 다리 밑에 가면 제가 세수할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라고 왕자가 된 소년이 말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거지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신분이 거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왕자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왕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거지라는 생각의 옷을 벗어버리고 왕자다운 삶을 익히는데 필요한 새로운 마음의 옷을 입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 도시를 지나는 99번 고속도로상에서 벌을 운반하던 트럭이 뒤집혀서 1,600만 마리의 왕벌들이 탈출해 도시 일대를 뒤덮고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방충복을 입은 수많은 경찰관들과 소방관들 그리고 양봉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7시간 동안 투입되어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그 사태를 진압하는 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이 그곳을 지나가던 오토바이족 들이었다.
그런데 왕벌들이 새까맣게 우글거리는 가운데로 늠름하게 걸어 들어가서 벌들을 잡아넣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침착하고 용감하게 행동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옷이었다. 그들은 비싼 옷도 유명한 회사의 옷도 세련된 옷도 아닌 얇고 투명하지만, 벌들이 뚫을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생 엄청난 종류의 옷을 입고 살아간다. 저마다 추구하는 옷이 다르다. 그러나 나를 위한 비싸고 멋진 옷보다도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음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베스트 드레서가 아닌가 싶다.